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죽어도 선덜랜드(Sunderland ’Til I Die)’는 단순한 축구 이야기를 넘어서, 지역과 삶을 축구에 건 팬들의 진심을 담아낸 작품입니다. 이 다큐를 통해 우리는 잉글랜드 축구 팬들이 팀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문화가 한국 축구 팬문화와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를 짚어볼 수 있습니다. 팬이라는 단어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지는 지금, 두 나라의 축구 문화 차이를 살펴보겠습니다.
'죽어도 선덜랜드'가 보여준 팬의 진심
‘죽어도 선덜랜드’는 잉글랜드 축구 리그 챔피언십 소속의 선덜랜드 AFC 구단이 프리미어리그에서 강등된 이후의 과정을 밀착 취재한 다큐멘터리입니다. 경기력 하락, 구단 경영 실패, 선수 이탈이라는 위기 속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건 팬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구단의 실망스러운 결과에도 아침부터 줄을 서서 시즌 티켓을 구매하고, 경기장에서 구단주의 결정에 눈물을 흘리며 분노와 희망을 동시에 안고 응원합니다.
특히 인상적인 건 축구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삶의 일부이자 공동체라는 정체성이라는 점입니다. 구직에 실패한 노동자가 “팀이 지면 그 주 전체가 망가진다”고 말할 정도로 선덜랜드라는 클럽은 지역민의 희망이고, 현실을 이겨내는 힘입니다. 다큐를 통해 관객은 그들이 단순한 ‘팬’이 아닌, 구단의 구성원이자 지역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한국 축구 팬 문화, 무엇이 다를까?
한국에서도 축구에 대한 관심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 발표된 2024년 K리그 입장 수입은 425억 원을 돌파,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며 팬들의 발걸음을 증명했습니다.
FC서울은 76억 원, 울산 현대는 46억 원의 입장 수입을 올렸고, K리그2에서도 강등된 수원 삼성이 31억 원의 입장 수입을 기록하며 리그의 흥행을 이끌었습니다. 객단가도 1만 원을 넘기는 등 단순한 방문을 넘어 ‘지불 의사가 있는 팬’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지표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수치는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K리그가, 이제는 점차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팬덤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들어섰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국가대표 경기에는 붉은 악마가 가득하고, K리그에도 각 구단마다 열정적인 서포터즈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다큐에서 본 선덜랜드 팬들과는 다소 다른 결의 온도차가 존재합니다.
우선, 한국에서는 축구가 삶의 모든 것이 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경기 결과가 개인의 감정선이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적죠. 또한 지역 밀착형 팬덤보다는, 선수 중심이나 인기 구단 중심의 스포티비화된 팬문화가 더 강하게 나타납니다. 지역 축구단이 수십 년간 지역민과 함께 성장한 잉글랜드와는 뿌리 자체가 다릅니다.
또한 한국은 스포츠 구단의 기업 소유 모델이 많아, 팬과 구단 간의 거리감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죽어도 선덜랜드’ 속 팬들은 직접 구단 운영진에 불만을 표출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 안에 있습니다. 이러한 참여형 팬문화는 아직 한국 축구에서 본격적으로 자리 잡지 못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떤 팬이 되어야 할까?
‘죽어도 선덜랜드’를 본 한국 축구 팬이라면 아마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될 겁니다. “나는 진짜 팬일까? 아니면 단순 소비자일까?”
잉글랜드 축구 팬들은 팀이 승강을 반복하고, 구단이 재정 위기를 겪어도 ‘절대적인 충성’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반면 우리는 구단의 성적이나 스타 선수의 유무에 따라 팬심이 오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이건 문화적, 구조적 차이에서 비롯된 현상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선덜랜드 팬처럼 되어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죽어도 선덜랜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메시지는, 축구가 공동체의 힘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입니다. 지역 축구팀을 지키고, 단순한 승패를 넘어서 구단의 철학과 가치를 응원하는 문화가 자리 잡는다면, 한국 축구도 한층 더 성숙한 팬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K리그, 지금이 변화의 기회다
K리그는 이제 더 이상 ‘관심 없는 리그’가 아닙니다. 두 시즌 연속 유료 관중 300만 명을 넘기며, 명확한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관중 수뿐만 아니라, 팬이 구단과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 팬의 목소리가 구단 운영에 얼마나 반영되는지를 고민할 때입니다.
‘죽어도 선덜랜드’는 그 단서를 제공합니다. 축구는 단순한 경기 결과가 아닌, 지역과 사람, 공동체의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과 영국의 팬 문화는 다르지만, 이 다큐를 통해 우리는 스포츠가 단순한 경기를 넘어 삶의 위로가 될 수 있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제는 그런 축구를 꿈꿔볼 수 있지 않을까요?